대한민국 철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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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철도공사, 국가철도공단의 전신인 중앙행정기관으로, 약칭은 영문명인 '''K'''orean '''N'''ational '''R'''ailroad의 앞글자를 KNR.
1963년에 교통부 육운국 및 시설국에서 맡아왔던 철도사업부문이 분리된 것이 시초인 정부기관이'''었'''다. 국철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해체 직전에는 코레일이라는 애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공사화가 된 지 19년이나 지났음에도, 철도청이란 단어가 익숙한 사람들은 한국철도공사를 그냥 철도청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사실 한국철도공사는 6음절이고 철도청은 3음절이니... 하지만 코레일도 3음절이다.[5] 오랫동안 명칭이 철도청이었던 영향도 있다.
일부 철도 동호인들이 그리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철도공사를 중앙행정기관 철도청으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매년 나오고 있다.
2. 상징
철도청에서는 모두 3가지 도색을 사용해 왔다. 1994년 도색 변경 전까지는 새마을호는 하얀색과 파란색 도색[6][7] , 무궁화호는 하얀색+빨간색, 통일호는 하얀색+초록색[8] , 비둘기호는 새마을호와 컬러는 같지만 색상 배열이 반대였다.[9]
기관차의 경우에는 새마을호와 도색을 공유한 하얀색+파란색, 검은색에 주황색 줄무늬를 넣은 일명 호랑이 도색이 있다.
1994년 신 C.I[10] 의 등장과 함께 도색이 변경되었는데 흔히 말하는 구도색 즉 노랑+초록색으로 변경되었다.
새마을호와 통일호는 노란색과 초록색[11] , 무궁화호는 노란색과 주황색으로[12]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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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도색을 한 디젤기관차. 장항선을 운행하던 통일호이며 2003년에 남포역에서 촬영되었다.[13]
뒤에 달린 발전차는 전망형 조선공사 발전차이며, 맨 뒤에는 우편물 수송객차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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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열차에 1999년 붙은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티커. 1999년에 제작된 수도권 전철 4호선용 한국철도공사 341000호대 전동차의 3차분 일부 객차 출입문에도 이 엠블럼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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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시절의 마스코트인 치포치포. 2000년 3월에 제정되었으며 이외에도 분홍색의 여자캐릭터 버전과 디젤기관차, 증기기관차 등 여러 캐릭터가 있었으며 공사화 이후에도 2009년까지 쓰이다가 KTX-mini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2.1. 로고
대한민국 철도청에서는 한국철도공사 설립 전 (2004년) 까지 총 3가지 로고를 사용해 왔다.[14]
3. 사가와 광고
지축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 철마야 번개같이 밤낮을 달려
지축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 철마야 번개같이 밤낮을 달려
희망을 싣고 번영을 싣고 바퀴를 굴려 새 역사 짓네
힘차다 살아뛰는 나라의 핏줄 뻗어가는 철도마다 커가는 나라
산넘어 강건너 들을 지나서, 동서로 남북으로 국토를 누벼
산넘어 강건너 들을 지나서, 동서로 남북으로 국토를 누벼
가는 곳 마다 꿈을 이루려 어제도 오늘도 땀을 흘리네
힘차다 살아뛰는 나라의 핏줄 늘어가는 철길따라 살찌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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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당시부터 공사화된 후 2010년까지 사용된 사가 '철도의 노래'.
4. 철도 회원 제도
코레일 멤버십의 예전 명칭으로, 1989년에 만들어진 의외로 역사가 긴 물건이다. 철도청 시절에는 엄청나게 퍼주는 제도였다. 가입비도 아닌 예치금 2만원을 내면 모든 예매건에 대해 5% 할인 + 마일리지 3% 적립이라는 막강한 제도였다. 당시에는 역방향, 동반석, 출입문 좌석, 조기예약, 자동발매기 등이 도입되기 이전이라 철도회원 외에는 사실상 기차값을 할인받기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그리고 일정 횟수별로 열차 무료 이용권을 1년에 1번씩 보내주는 형태였다.
이 시기에 서울은행, 조흥은행 등과 손잡고 비씨카드에서 철도회원카드에 신용카드 기능이 통합된 것도 발급하곤 했다. 단종된후 이 철도회원 통합 신용카드는 철도 5% 할인, 고속버스 5% 할인,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동시적립이라는 희대의 사기템인 비씨매직패스가 되어서 나타났는데...
구 철도회원카드는 연도 두자리에 일련번호로 구성된 회원번호를 부여했는데, 아직 밀레니엄 버그에 벌벌 떨던 시절이었던지라 철도청 ARS로 전화를 걸어서 9를 누르면 자동으로 철도회원번호 입력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5. 역대 청장
6. 소속 기관
- 한국철도대학: 건설교통부 및 국토해양부 소속기관으로 전전하다 교육부 소속기관이던 충주대학교와 통합하여 한국교통대학교로 개편되어 교육부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철도청 시절에는 엄연한 철도청 소속기관이었기에 학장 이하 교직원들을 철도청장이 직접 임명했다.
- 철도인력개발원: 현재의 한국철도공사 인재개발원. 교통대와 부지를 공유하지만, 공사 전환 이후에는 구역이 엄연히 분리되어있다. 전기, 수도 등등 모두.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지적도 메뉴를 들어가도 쉽게 알 수 있다.
- 철도박물관: 한국철도공사로 운영권이 이관되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나 교통대 부설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철도공사 소속기관으로, 직제상으로는 인재개발원 소속기관으로 되어 있다.
- 철도기술연구소: 1994년 철도청에서 분리되어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되었다.
- 철도병원: 용산, 대구, 부산, 순천에 있었는데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1980년대에 분리되었다. 현재의 대구 동인병원, 부산보훈병원. 용산에 있던 병원은 아직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하고 있는데, 중앙대학교가 운영하다가 철수하고 지금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 철도청 축구단
- 철도청 야구단
6.1. 지역본부
교통부 시절 지방철도조직 명칭은 'XX철도국', 2000년 초까지 'XX지방철도청'이었으나[22] , 2000년 중반부터 'XX지역사무소'를 거쳐 2004년부터 아래 명칭으로 바뀌었다.
- 서울지역본부
- 대전지역본부
- 부산지역본부
- 영주지역본부
- 순천지역본부
6.2. 철도차량정비창, 공장
- 인천공작창
- 서울철도차량정비창: 약칭으로 서창으로 용산역#s-5.1의 시설을 지칭하였다. 이후에 수색역 근처에 수색기지가 세워지면서 해당 명칭이 이 곳으로 바뀌고, 용산역은 수도권철도정비창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 고양철도차량정비창
- 대전철도차량정비창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6.3. 철도경찰대
철도경찰 업무 쪽은 공사화되지 않고 현재의 국토교통부 소속으로 남았고 철도특별사법경찰대와 그 아래 4개의 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를 둔다.[23]
- 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 부산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 영주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 광주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7. 공사화
1963년 이전 교통부직제에 따르면, 교통부가 철도사업을 관장했던 부서로는 육운국, 시설국, 공전국 등에서 맡았다. 6.25 전쟁 이후 관영사업으로써 지속적인 적자 해결과, 1963년 당시 한국 철도의 효율적인 확장을 위해 교통부에서 철도사업부문을 분리해 소속 외청으로 독립했다. 당시 세계은행에서 공사화를 제안했으나 뚜렷한 검토를 못한채 철도청이 발족했다. 따라서 홈페이지 주소가 '''go'''.kr로 끝났다. 지금도 리다이렉트가 가능하긴 하다. 대한항공은 민영화 이전에도 공기업이었지만, 철도청의 경우는 그 자체로 국가기관이었으며 직원들은 공무원이었다. 따라서 공기업인 현재는 업무방해, 교통방해 등만 적용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열차업무 방해시 공무집행방해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계속 적자를 찍어 나갔고 1972년에 반짝 흑자를 내기도 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화물 수송의 증가로 인한 것이라, 결국 이듬해부터 계속 적자를 기록한다. 아마 철도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가 도로 우선주의를 선택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가 철도에 비해 건설비용이 싸니까.
1980년대에 철도청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사화, 민영화, 분할민영화의 3가지 방안이 대두되었으나 민영화는 법률의 미비와 인센티브의 부족으로 좌절되었고 공사화는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1990년대에 또 다시 공사화 시도를 했다. 철도 운영은 민간에 넘기고 시설 운영을 철도청에서 맡는 '상하분리'의 형태로 시도했으나 정부-노조 간의 줄다리기만 이어지다가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2005년에 공사화가 성사되었으나 전부터 너무 이리저리 흔들며 진행해온 정책이다 보니 모양새가 어중간해졌다. 우선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분리해 운영은 한국철도공사에 넘기고 시설 관리는 국가철도공단[24] 에 넘겼으며, 이후 완전히 시설 관리 부문을 국가철도공단에 넘겨버렸다. 관련 법률상 반드시 공무원이 맡아야 하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업무는 철도특별사법경찰대를 신설해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 잔류 흡수되어 국토교통부 철도국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홈페이지 주소도 korail.com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전 주소인 korail.go.kr로도 연결은 된다. 현재 한국철도공사 본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어쨌든 이는 서로의 이해 관계를 엇갈리게 만들어서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이 견원지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분리된 이후 두 기관이 사고만 났다 하면 책임을 넘겨서 그런지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을 재통합해 옛 철도청 체제로 환원하던지, 아니면 국가철도공단을 한국철도공사 하부의 시설관련본부로 격하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이 정책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나 다시 철도청 체제로의 환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8. 관련 문헌
[1] 경원선, 경인선, 경부선 구간[2] 일산선 구간[3] 과천선, 안산선 구간[4] 현재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한국철도공사 사이트가 나온다.[5] 이런 이유로 젊은층들은 '코레일', 중노년층은 '철도청'으로 부르는 명칭이 양분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6] 우유도색이라는 별칭이 있다.[7] 스테인레스로 제작한 새마을호 유선형 객차나 DHC 디젤동차는 흰색이 없다. DHC 동차는 전두부는 붉은색이었다.[8] 1983년 이전 특급 시절과 1984년 이후 통일호 시절의 색상 배열이 달랐다. 특급 시절 도색은 무궁화호가 우등 시절 객차에도 사용되었다.[9] 1983년 이전 보급/보통 시절 객차는 하얀색+밤색이었다.[10] 역삼각로고[11] 통일호는 처음엔 노란색+남색이었으나 1997년에 각역정차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초록색으로 변경되었다.[12]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주황[13] 7408 특대는 3연속 건널목 사망 사고를 전라선에서 새마을호를 견인하면서 낸 이력이 있다(...)[14] 철도청 발족 전 로고는 날개달린 바퀴 참고[15] 사실상 1995년까지, 철도 대학에서는 1999년까지 사용되었다.[16] 1994년 당시 서울 1000년 타임캡슐에 역 삼각 마크를 한 열차가 표지에 실린 철도청 홍보 자료가 들어가 있다. 1994년 10월 당시 신문 광고에도 이 역삼각 로고가 사용되었다.#[17] 2003년 1월에 신 로고가 발표되었으나 기존 역삼각 로고가 지속적으로 쓰였다.[18] 신 로고 발표 날[19] 신 로고가 발표된 연도는 2003년이나 2003년에도 역삼각 로고가 지속적으로 쓰였다. 2003년에 도입된 무궁화호 리미트객차 후기형이 구도색으로 도색되어 생산되었고, 2003년 도입분 4400호대 디젤기관차 일부도 구도색으로 도색되어 생산되었다. 사실상 역삼각 로고는 2003년 말까지 쓰였다고해도 무방하다.[20] 첫 장면은 당시 동해남부선의 달맞이고개 구간에서 본 해운대해수욕장. 40년 동안 정말 헛웃음이 날 정도로 변한 것이다.[21] 참고로 영국의 내셔널 레일도 비슷한 내용의 광고를 낸 적이 있다.[22] 서울지방철도청 등.[23] 철도망도 경부선이 중심이라 그런지 서울, 부산은 유이하게 지방철도청, 철도차량정비창, 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트리플크라운이다. 하지만 철도특별사법경찰대 본대가 대전인 점을 감안하면 대전이 철도 버프는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다... 애초에 철도청 자체부터 1998년에 정부대전청사로 이전하고 그 덕분에 현재의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까지 대전이 싹쓸이한걸 보면 뭐... 비슷한 예로 전매청이 공사화되어 한국담배인삼공사로 변신했다가 민영화된 KT&G도 대전이 먹었다.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를 통해 여자배구단(대전 KGC인삼공사)까지 앉아서 득템...[24] 그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